▲ 발달장애인 자립생활을 위한 새로운 서포트 체계 국제 세미나에 참석한 토론자들. ⓒ이솔잎 기자 |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새로운 지원 체계를 논의하기 위한 국제세미나가 열렸다.
현재 한국의 복지정책 대다수는 획일적인 지원 체계 등으로 이용자 욕구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미흡한 상황이다.
또한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전달 받는 서비스가 아닌 중개기관이나 대행기관 등을 통해서 필요한 서비스를 전달 받기 때문에 그 범주가 협소하다는 것.
이에 한국소아마비협회와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미국과 호주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책, 자기 주도 프로그램과 개인예산제의 방향과 동향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한국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 등을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미국 자기 주도 프로그램, 개인 선택·통제권 강화에 초점
미국 자기 주도 시범 프로그램 ‘캐쉬 앤 카운슬링(Cash and Counseling)’의 총 기획자인 참가자주도서비스국가자원센터(National Resource Center for Participant-Directed Service, 이하 NRCPDS) 케빈 마호니(Kevin Mahoney) 교수는 자기주도프로그램의 현재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명칭은 다르지만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많은 나라에서 장애인 복지 서비스 모델로 선택하는 자기주도 프로그램은 개인의 선택과 통제권 강화에 초첨을 두고 있다.
미국의 자기 주도 프로그램은 지난 1998년에 시작돼 현재 대부분의 주에서 시행 중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내에 살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서비스 모델이다.
이 프로그램은 이용자의 장애 정도에 따라 현금 급여를 제공한다. 이용자는 월 한도액 내에서 자유롭게 물건 구입을 비롯해 활동보조인과 돌봄제공자 등을 직접 고용을 할 수 있다.
케빈 교수는 자기주도프로그램의 목표로 개인별 예산을 통해 지원되는 개별화된 서비스를 관리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NRCPDS 케빈 마호니 교수. ⓒ이솔잎 기자 |
케빈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자기 주도 프로그램은 ▲유연한 개별 맞춤 예산 ▲개인이 직접 지출 계획 작성 ▲재정 관리와 카운슬링 서비스 등 기본적인 공통 조건만 갖추면 각 주마다 개별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이는 각 주마다 자기 주도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목표가 다르고 재원조달 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
현재 약 298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각 주마다 평균 3~5개의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다. 이에 대한 재원은 저소득·장애인 지원제도와 지방정부 조세 등에서 조달되고 있다.
또한 자기 주도 프로그램에는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카운슬러와 서포트 브로커를 지원한다. 이들은 이용자가 자율적으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정보와 상담 등을 제공한다.
지원 내용으로는 ▲예산 계획표를 이용자가 직접 작성하는 방법과 계획표를 이용하는 방법 ▲활동보조인과 돌봄제공인 등을 고용하는 고용인으로서의 관리 방법과 고용관련 법률 등을 교육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사회 지원의 네크워트를 통해 개인의 서비스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현금급여 사용처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위급 상황 등을 파악하고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실 미국 또한 자기 주도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어 이들을 이해 시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기 주도 프로그램을 접한 사람들 모두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느냐?’라는 의문을 보였던 것.
케빈 교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자기 주도 프로그램 입법 과정을 먼저 설명해야겠다. 나에게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다. 아들은 이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을 때 많이 혼란스러워 했다. 스스로 예산관리를 한 적이 없었고 또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체계를 누구도 설명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자립할 수 있음을 보여주게 됐다. 그래서 나는 내 아들을 자기 주도 프로그램 입법 과정에 참여시켰고, 의회 의원들 앞에서 자기 주도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면을 직접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며 “의회 의원들은 프로그램에 참여한 당사자를 직접 보니 믿음을 갖게 됐고 자기 주도 프로그램의 입법은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즉, 자기 주도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이행, 평가하는 과정에 이용자를 참여시켜 이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것.
또한 케빈 교수는 장애 정도가 중증인 경우도 문제 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정책은 장애인에 대한 접근 방식을 의료적으로 하기 때문에 전문성 등을 강조하고 이를 데이터화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 주도 프로그램은 의료적인 접근이 아닌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욕구를 통한 맞춤형 교육 등이 지원되기 때문.
케빈 교수는 “현재 이 프로그램은 품질 향상 등을 위해 끊임없이 개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중증 장애에 대한 맞춤형 프로그램도 꾸준히 개발 중에 있고 현재 하나의 프로젝트가 준비 중에 있다.”며 “자기 주도 프로그램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용자는 자신이 예산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권리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고 강조했다.
자기주도프로그램 한국 도입시 충분한 준비기간 필요
▲ 이화여자대학교 전혜상 연구교수. ⓒ이솔잎 기자 |
이와 관련 NRCPDS의 전 연구원이자 이화여자대학교 전혜상 연구교수는 자기 주도 프로그램이 한국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한 준비기간을 통해 혼란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연구교수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중앙정부에서 획일적인 복지서비스를 전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 돼 복지 사각지대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
이같은 이유로 자기 주도 프로그램이 한국에 도입된다면 지방자치단체의 서비스 체계나 복지공무원, 민간 사회복지 전문가 등의 역할과 기능의 재조정이 수반돼야 한다.
전 연구교수는 “먼저 자기 주도 프로그램 도입 초기에는 예산이 많이 사용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기 주도 프로그램의 경우 지역자원과의 연계를 통한 개인 맞춤형 지원제도이기 때문에 현재 시설중심의 예산 지원보다 덜 사용될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또한 재정관리와 카운슬링 서비스 지원 강화와 함께 사회복지사에 대한 역량강화 교육이 제공돼야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이해관계자에 대한 명확한 역할 분담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확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호주의 발달장애인 서비스 사정 도구인 지원 욕구 평가(I-CAN) 개발자인 사무엘 아놀드(Samuel Arnold) 박사(수료)와 시드니 대학교 비비엔 리치스(Vivienne Riches) 교수는 호주의 국가장애인보험제도(NDIS)에 대해 설명했다.
지난 2013년 입법화 된 NDIS에서 사용되고 있는 서비스 사정 도구 I-CAN은 개인의 욕구를 조사해 개인 예산을 할당(개인예산제)한다.
여기서 조사되는 개인의 욕구에 대한 질문 문항으로는 ▲인생에서 행복한 시간과 비교해 지난 2주 동안 얼마나 행복하세요? ▲인생에서 자신이 건강하다고 느꼈던 시간과 비교해 봤을 때 지난 2주 동안 얼마나 건강하다고 느끼셨나요? ▲비공식 지원으로 이 일에 도움을 받을 수 있나요? 등 다양한 문항을 인간 중심 계획법에 기초해 장애인 당사자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이때 의료적 기준 또한 함께 조사하고 있으며 최소한도로 내용에 맞지 않은 사람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된 기준은 존재한다.
이들은 “모든 문제를 개인 예산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의 상황을 평가하는 순간에 비공식적 지원, 즉 이미 개인이 이용 가능한 것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건강이나 교육 등 같은 공식적인 지원을 추가하는 개념을 대입하는 것이 바로 I-CAN이다. 이를 통해 장애인의 사회적, 경제적 자립의 극대화화 완전한 참여를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 호주 I-CAN 개발자인 사무엘 아놀드 박사(수료)와 시드니 대학교 비비엔 리치스 교수는(왼쪽부터). ⓒ이솔잎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