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자녀를 둔 부모, 고통에 입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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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369회 작성일 15-04-23 15:56본문
발달장애성인에 대한 대책 요구하며 시청 바닥에서 첫날밤 보낸다2015.04.09 22:21 입력
“아이가 자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제가 자폐가 됐어요. 제가 발달장애인이 됐어요.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고요, 미래에도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 나오기 전에 아이에게 묻고 싶었어요. 네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면 좋을까. 그런데 아시잖아요. 자기 고통을 표현 못 하잖아요.” (임은화, 자폐성장애 1급인 16세 최석원의 어머니)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그 스스로 내가 “발달장애아이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부모의 삶은 아이의 삶을 따라갔다.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의 엄마, ○○의 아빠로 살아야만 했다. 문제는, 그 삶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종속의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는 갈 곳이 없었다. 집에 있는 아이를 돌보는 건 오로지 부모의 몫이었다.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는 9일 서울시민청 시민발언대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이 겪는 고통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른바 ‘고통 증언 대회’다. 삶을 모조리 꺼내 보임으로써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렸다. 환부를 드러냈다. “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똑같지 않다”라는 말을 할 때면 목이 멨다. 떨렸다. 그 말을 내뱉고 나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데 지난한 시간이 걸렸듯 그와 비슷한 무게의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래 곯은 상처에선 깊은 울음이 흘렀다.
▲자폐성장애 2급 김하민의 어머니 박지영 씨, 자폐성장애 2급인 박의찬의 어머니 이용주 씨 |
“아이가 작년 2월에 학교를 졸업했어요. 화가 나면 사람을 만지는 습성이 있는데 사람들이 성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병원에서 약을 지어 먹였어요. 그 약을 먹였더니 도벽이 생겼어요. 빵, 음료수에서 돈으로. 만 원 집어가도 피해자들이 10만 원 달라 하고, 15만 원 가져갔는데 40만 원 달라 해도 다 줬어요. (……) 지난 1월엔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할머니와 부딪히면서 그분 이가 부러졌어요. 병원비 650만 원에 합의금 500만 원. 아이를 충북에 있는 정신병원에 집어넣지 않으면 사건 해결이 안 돼서 입원시켰어요. 아이는 매일 집에 오고 싶다고 병원에서 전화하고, 아이 아빠는 거기에 집어넣어야지 집안 망하게 둘 거냐, 하고.” (이용주, 자폐성장애 2급인 22세 박의찬의 어머니)
“지적장애 2급의 29세 딸을 키우고 있는 부모입니다. 아이가 6개월이 되었을 때 장애를 알았어요. 눈물로 고등학교까지 보냈습니다.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있었는데요, 거의 패면서 구구단을 가르쳤어요. 지금 그거 아무짝에도 필요가 없는데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 아이가 서른이 될 거라고 생각 못 했어요. 내일이면 서른인데, 어느새 이 아이가 서른 살이 되어 가지고.” (최상숙, 지적장애 2급인 29세 이유나의 어머니)
어린아이였던 자녀는 청소년기를 지나 어느덧 어른이 됐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는 것은 당연한데 생각지 못했다. 내 아이도 ‘성인’이 된다는 것. 어른이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게 어렵고, 의지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게 힘들다. 평생을 가르쳤는데 잘 되지가 않는다. 몸은 컸지만 인지 능력은 여전히 아이의 시간에 머물러있다.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성인. 아이인가, 어른인가. 자녀가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 있을 때, 아이의 삶이 온전히 부모의 몫일 때, 부모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섰다. 그리하여 어떤 부모는 아이보다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고 싶다 했고 또 다른 부모는 같은 시각에 세상을 뜨고 싶다 했으며, 누구는 더는 대책이 없을 때 연탄불로 아이와 함께 죽을 마음을 이미 품고 있노라, 하였다.
나만의 고통이라고 생각했는데 광장에 서서 이야기 하니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들이 많았다. 모두의 고통이었다. 비슷한 고통을 겪는 이 다수가 모일 때, 사람들은 이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사회에 묻는다. 문제는 무엇인가. 왜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은 갈 곳이 없는가. 비장애인을 위한 공간은 저토록 많은데.
“스무 살 이후,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길이 참 막막합니다. 사회에서 오라는 데도 없고, 주간보호센터도 중증이라는 이유로 막혀있구요.” (이정욱, 뇌병변·발달장애 중복장애 1급인 20세 윤민지의 어머니)
“복지관 이용 나이는 39세로 정해져 있습니다. 39세 이후엔 어디로 가라는 건가요. 구석에 찌그러져 있으면, 엄마는요? 엄마의 삶은요. 엄마의 삶은 없잖아요.” (최상숙, 지적장애 2급인 29세 이유나의 어머니)
“사회를 한 번 보세요. 각 동마다, 백화점마다 문화센터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국가 예산이 소요되고 있습니까. 거기선 4, 5명을 놓고도 수업 진행해요. 우리 아이들도 그러한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 우리 아이들도 균등하게 여가를 즐기고 건강하게 살아갈 기회를 제공받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평생교육시설을 설치해 주십시오.” (박지영, 자폐성장애 2급인 15세 김하민의 어머니)
▲이날 많은 부모들이 발달장애인 자녀들과 함께 참석했다. |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는 9일 서울시민청 시민발언대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이 겪는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는 '고통 증언 대회'를 열었다. |
요구 사항은 명쾌했다. “제가 낳았지만 제가 다 책임질 수가 없습니다.” 고로 이 사회에서 이 고통을 분담해달라.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이 갈 곳을 마련해달라. 사회 구성원이기에 이 사회에도 그 책임의 몫이 있다는 거다. 그래서 고통을 꺼냈다. 이날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 말을 하기보다 아이와 함께 나서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는 수치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13년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 학령기가 지난 발달장애인은 5만 21명이다. 그러나 주간보호시설 등 발달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기관 수용인은 5000여 명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90%에 이르는 발달장애성인은 집에만 있거나 시설로 보내지고 있다. 갈 곳이 없다.
지난해 발달장애인법이 통과되고 올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들은 이 법에 근거하여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 권역별로 발달장애성인을 위한 평생교육센터와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설치해 운영 예산을 확보할 것, 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할 것.
이날 ‘고통 증언 대회’를 마친 200여 명의 사람은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했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내일의 삶도 어차피 오늘과 같기에. 그들에겐 여기가 벼랑이다. 그렇게 오늘 밤 50여 명의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서울시청 바닥에서 잠을 잔다. 첫날밤, 서울시청은 아직 답이 없다.
▲‘고통증언대회’를 마친 200여 명의 사람들이 서울시청 로비를 점거했다. |
▲발달장애자녀와 함께 이날 시청 점거에 참여한 한 어머니. |
▲휠체어를 탄 발달장애인 앞에 피켓이 세워져 있다. "서울시는 발달장애인평생교육 지원 정책을 수립하라" |
▲한 어머니가 자녀를 껴안고 울고 있다. |
▲"발달장애인도 시민이다. 지원정책 수립하라" |
▲서울시청을 점거한 사람들. |
▲서울시청을 점거한 사람들. |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