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쓰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 비마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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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373회 작성일 20-11-04 09:17본문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생후 20개월의 발달장애아동
방역을 위해 병원과 사회는 무슨 노력을 하는가?
매주 아이의 재활치료를 위해 다니는 대학 병원에 민원을 넣었다. 마스크를 쓰기 힘든 아이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얼마 전 이 병원에서는 치료가 힘들어서 우느라 마스크를 뺀 아이를 보고 병원장이 치료사들에게 고성으로 막말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와 아이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예정대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 입구에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체온과 건강 상태를 체크하고 입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달리 방역 담당 직원이 아이들의 마스크 착용 여부를 계속 감시했고, 잠시라도 아이가 마스크를 벗으면 다가와서 마스크 씌우기를 종용했다. 치료사들도 압박을 받았는지 치료보다는 마스크 착용에 더 신경을 썼고, 소아 재활치료실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그 분위기를 금세 알아차렸다. 여기저기서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몸짓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 아이는 코로나가 터진 이후 바로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고 검사나 외래 진료도 여러 차례 치렀다. 그때마다 마스크를 잘 쓰고 있던 아이였다. 그러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느끼자 아이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아이의 몸부림에 일회용 마스크는 찢어졌고 면 마스크는 눈물, 콧물, 침에 잔뜩 젖어 버렸다. 손을 자유롭게 쓰게 된 20개월 아이는 마스크를 연신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때마다 치료사와 방역 담당 직원은 마스크를 씌우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바닥에 떨어진, 잔뜩 젖은 면 마스크를 악 지르며 우는 아이의 코와 입에 씌우는 건 방역을 위한 게 맞는가? 아이의 건강을 염려한 지침이 맞는가? 서지 못하는 아이를 서게 하고, 걷지 못하는 아이를 걷게 유도하는 물리치료의 운동량은 어마어마하다. 근육에 힘이 없어 20개월이 되도록 서지 못하는 내 아이는 물리치료를 받을 때마다 숨이 넘어가게 운다. 마스크 착용 압박까지 받으니 재활 치료를 받는 한 시간 반 내내 목이 쉬도록 울었다. 우는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웠다가 호흡 곤란이라도 오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치료사와 직원에게 항의하는 대신 보란 듯이 더 큰 소리로 “마스크 써야 한대”라고 말하며 아이의 코와 입을 가렸다. 내가 안 씌우려는 게 아니라고,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그날 치료실에 있던 모두가 그랬다. 방역 담당 직원은 아이의 연령이나 건강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굳은 얼굴로 마스크 씌우라는 말만 반복했고, 치료사들도 치료보다는 마스크를 씌웠다는 걸 보이는 데 집중했다. 마스크를 잘 쓰고 있는 아이의 보호자들은 마스크를 잘 씌웠다는 걸 증명하는 몸짓을 하고 있었고, 마스크를 거부하는 아이의 보호자들은 씌우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걸 보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걸까. 발달이 더딘 아이를 위해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왔는데 치료보다 마스크 착용이 최우선이 되었다. 바닥에 떨어진 더러운 마스크를 아이 입에 씌우면서까지 지키려는 방역 지침은 누굴 위한 걸까.
집에 오며 눈물이 쏟아졌다. SNS에 하소연을 했다. 많은 분들이 함께 분노해 주셨고, 어린아이에게 마스크 착용은 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 분도 계셨다. 그제야 뒤늦게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방역 지침을 찾아보았다. 생활 방역인 1단계부터 전국 유행인 3단계까지 모든 방역 단계에서 마스크 착용 예외 사항에 “24개월 미만의 유아, 뇌병변·발달장애인 등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벗기 어려운 사람, 호흡기 질환 등 마스크 착용 시 호흡이 어렵다는 의학적 소견을 가진 사람”이라는 대상과 “세면, 음식 섭취, 의료행위, 공연 등 얼굴이 보여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명시돼 있었다.
내 아이는 24개월 미만의 유아이며, 스스로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벗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이고 병원에서 의료행위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건 당국에서 정해놓은 마스크 착용 예외 사항에 빠짐없이 해당하는 아이였다. 분노가 치솟았다. 병원에서 이러한 지침을 몰랐을 리 없으면서 내 아이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요했다는 게 너무나 화가 났다. 방역을 위해, 아이의 건강을 위해 마스크를 쓰라고 강요한 게 아니라는 게 명백해졌다. 내 아이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한 시간 반 동안 마스크와 씨름해야 했던 걸까.
거의 1년 내내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끊이질 않지만 뉴스 앵커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소식을 전한다. 처음에는 집에만 있던 사람들도 사태가 장기화 되자 식당도 가고 마트도 가고 치과에도 가고 운동도 하고 있다. 결혼식도 장례식도 열린다. 마스크와 함께 하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그 일상 중 꽤 많은 순간 마스크를 벗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병원장이 치료사의 인권을 무시한 소식을 전하는 기사의 댓글에는 “마스크를 씌웠어야지”, “원장이 맞는 말 했네”, “마스크 안 씌운 애 엄마가 맘충” 등등의 비난 댓글이 달렸다. 재활 치료를 받는 어린아이에게 사람들은 너무나 강력하게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게 잘못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약자에게 사람들은 더 엄격해진다. 정부가 정한 방역 지침에서 예외라고 보호된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써도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할 뿐인 비장애인 성인에게 적용하는 것 이상의 엄격함을 요구한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으며 내 아이가 살아갈 사회의 일면에 대해 깊이 절망했다.
코로나19가 터진 뒤 한동안은 모든 치료실이 문을 닫았었다. 내 아이는 정기적으로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받아야 하지만 검사와 진료도 처음 몇 개월 동안은 뒤로 미뤘다. 그러다 조금씩 치료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의 소아 재활치료는 몇 개월을 대기해야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경쟁이 세다. 두 번 이상 결석하면 다시 대기 순서 맨 마지막으로 밀린다. 전염병이 도는 시절에 아픈 사람들이 대거 모이는 대학병원에 어린아이를 데려가고 싶은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발달장애 아이들은 마냥 치료를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불안함에 떨면서 다니는 재활 치료다. 누구보다 마스크 단단히 씌우고 싶은 사람이 대학 병원에 다니는 발달장애 아이의 엄마다. 전염병이 퍼지거나 말거나 내 새끼만 편하면 된다는 맘충이라서 안 씌우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사태가 장기화 되었을 때 병원은 대책을 세웠어야 한다. 식당에도 플라스틱 가림막을 설치하는 마당인데 치료실에는 가림막은커녕 치료 인원이 줄지도 않았다. 대기실에 거리두기 하라고 포스터만 붙여놓았을 뿐 환자 수를 줄이지는 않아서 의자에 다 앉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인원이 몰린다. 30분 치료가 끝나면 바로 다음 환자를 받는 치료사들이 그 1~2분 사이에 얼마나 소독을 철저히 하는지도 의문이고, 애초에 그건 치료사의 업무가 아니기도 하다. 그러나 병원 측은 치료 인원을 줄이거나, 치료 시간을 조정해서 소독을 철저히 하거나, 가림막을 설치하고 분리된 공간을 제공해서 마스크를 못 쓰는 아이도 치료받게 대책을 마련하거나 하는 일체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직 환자와 보호자에게만 마스크를 쓰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마스크는 신성불가침의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다. 비말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비말로 전파되는 감염병에 걸리거나 옮기지 않는 목표는 마스크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달성될 수 있다. 나는 발달장애를 가진 생후 20개월 된 내 아이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치료받을 권리를 누리기를 원한다. 병원에, 이 사회에 방법을 강구하라고 요청한다.
필자 소개 울림.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엄마보다 한발 빨리 크는 첫째와 남들보다 느리게 크는 다운증후군 둘째를 키우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