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더 가난해져야만 밖에서 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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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살 때부터 28년간 시설에서 거주한 송하일 씨
가족 수입은 없지만 사는 집 때문에 수급자에서 제외
가족 수입은 없지만 사는 집 때문에 수급자에서 제외
2011.03.15 00:00 입력 | 2011.03.15 17:48 수정
▲9살 때 시설에 입소해 28년간 생활하다가 올해 1월 체험홈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한 송하일 씨. |
“시설에 있을 때에는 수급권자로 인정을 받았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오면 더는 수급자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저를 책임져야 한다고 하던데, 어머니는 살고 있는 집 한 채가 있을 뿐, 아프셔서 일을 하지 못해요. 얼마 전에는 눈 수술도 받으셨고요.”
서울에 있는 장애인생활시설에서 28년 동안 살다가 지난 1월 중순 자립생활을 위해 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 반디불 체험홈에 입주한 송하일 씨(뇌병변장애 1급, 37세). 송 씨는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시설 밖으로 나오기 전에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곳으로 나오기 전, 어머니가 주민센터에 가서 내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는지 확인을 했는데 ‘재산이 있어 안 된다’라는 말을 듣고 오셨어요. 전에도 제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반대하셨는데, 그다음부터는 더욱 반대하셨죠. 저도 그때까지는 밖에 나가면 당연히 수급자가 되는 줄만 알고 있었죠.”
전에도 비슷한 반대를 경험했던 송 씨는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장애인생활시설 내에 있는 특수학교에서 공부한 송 씨는 1999년에 수능 시험을 치러 대구대와 나사렛대에 합격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당시 송 씨는 ‘지방에서 누가 너를 보조하겠느냐?’라는 시설과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혀 입학을 포기했다. 그 뒤로 후회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송 씨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드디어 시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올 때 ‘진짜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하지만 지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주거복지사업에서 나오는 지원금 등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이게 계속 나오는 게 아니니까 불안하죠.”
▲지난 1월 중순 열린 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 개소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송하일 씨(오른쪽). |
송 씨는 9살이던 1983년 1월 교사였던 아버지가 심장질환으로 돌아가신 뒤 곧바로 장애인시설에 들어갔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송 씨는 자신이 28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처음 가서 일주일 동안은 밥을 먹지 않았어요. 그 뒤에는 형들의 요구에 시달렸어요. 아버지가 ‘당당하게 살아가려면 지식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셔서 늘 책을 보았는데, 그럼 형들이 와서는 자신들의 숙제를 시켰죠. 그럼 ‘내가 왜 해야 하느냐?’라고 대들다가 맞기도 하고… 숙제를 다 하면 형들이 껌 하나 던져주고…. 그렇게 살았어요.”
송 씨는 10살 때 미국으로 입양을 가기로 하고 절차까지 밟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돌린 일도 있었다.
“그때는 다시는 가족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차마 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국가는 가족과 동떨어져 생활하는 시설에서 살 때는 지원을 해주다가, 가족이 있는 지역사회로 나오면 그때부터는 가족에 책임이 있으니 더는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해요. 가족이 책임질 수 있다면 제가 시설에 갔을까요?"
송 씨는 "어머니가 집을 팔아야만, 지금보다 더 가난해져야만, 제가 밖에서 살 자격이 있는 것인가?”라며 분노한다.
시설에 사는 동안 송 씨는 직접 자신이 기획해 바자회와 시화전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기에 지역사회가 낯설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이미 나는 자립을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송 씨는 시설 밖으로 나오고서야 자립생활의 의미를 선명하게 깨달았다고 한다.
“의사가 무리하게 허리를 쓰지 말라고 했지만, 허리가 아파도 제가 할 일은 제가 해야 해요. 이곳은 이렇게 몸도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어렵죠. 그래도 일상의 문제들을 하나하나 내가 계획하고 결정해서 한다는 게 전에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을 줘요.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건, 제가 계속 시설에 있었다면 알 수 없었던 것이죠.”
지역사회로 나온 송 씨는 시설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활동을 고민하고 있었다. 장애인이 사는 마을을 만들고, 자신처럼 수급자가 되지 못하거나 노숙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후원회를 조직하고, 드라마도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꿈 위로 부양의무자 기준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활동지원법, 장애아동복지지원법 3대 법안 제·개정을 위해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합니다.”
출처:비마이너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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