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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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개별적 특성에 맞는 모형 제시되어야
이미 작년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토론회에서도 등급제 문제점에 대해 복지부도 인정했고, 다만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연구와 비용 등의 어려움이 있다는 궁색한 변명이 있었다. 그리고는 새로운 장애등급심사에 예산을 붓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의 뒤끝을 보여주었다.
신체장애에 있어서, 의사들의 장애 여부와 기능 상태에 대한 1차 진단 후에 등급이 결정된다. 그리고 등급에 따라 사회서비스의 대상 여부, 정도 여부가 결정된다. 경험상 1차 진단과 사회서비스를 신청하고 결정하는 사이에서 등급이라는 숫자가 오류를 불러일으키고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등급이 정해지면 복지부가 그토록 일부 장애인을 전체 장애인의 행위인양 매도했던 것-어떻게 해야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을까-을 고민하게 된다.
OECD국가 중 복지 비율, 인권지수가 '최하위급'인 국가에서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에 따라 심하게는 가족까지 생활의 궁핍 여부가 판가름나는데 어찌 안 그럴까. 조금 더 움직이려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려면 이러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이것을 막으려고 복지부는 병원들에 이를 경계하는 몰상식한 공문을 보낸다. 일부 순수한 의사들의 참으로 권위적이고 냉정하고 타당치 않은 인색한 태도에 실소가 터지더라는 소감을 전해 듣기도 한다.
▲장애인단체의 국민연금관리공단 장애심사센터 점거 농성 모습. |
등급제에 의한 장애인 복지서비스는 우선 몇 등급을 받아야 좀 더 나은 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무슨 공인자격 등급도 아니고… 장애인들이 오랜만에 만나면 인사가 "몇 급 받았는가?"이다. 재심사에서 등급이 떨어졌으면(?) 말 그대로 장애상태가 좋아져야 하는데, 이구동성으로 "어떡하니…"라는 반응이 절로 나온다.
반면 경제활동을 하려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때의 "몇 급이세요?"는 다르다. 등급이 높을수록 불가능이라는 선입견으로 덧칠된다. 엉덩짝에 낙인이 찍히지 않았을 뿐이다. 장애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가진 장애 + 장애인이 속한 환경에서 겪는 장애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니 전자와 후자의 경우는 단적으로 대비되고 등급이라는 숫자는 장애인으로 하여금 어느 쪽으로도 불리함을 가중시켜 살아가게 할 뿐이다.
신체에 대한 의학적 진단이든, 환경의 장벽에 대한 사회적 진단이든 장애인이 활동하고 참여하는데 어떤 지원이 필요하고 나아가 발전할 수 있을까를 판단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개별적 선택이 가능한 구체적인 내용이 펼쳐져야 한다. 사람에게 등급 매기기는 행정편의일 뿐이다.
산업화는 인간마저 대상화시켜놓고 규격화·획일화 했다. '제3의 물결'에서 앨빈 토플러는 어느 하나의 제도가 모든 사회를 지배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치, 경영, 지식의 발전과 일상생활 등 모든 영역에서 변화는 획일성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한다.
탈 획일화, 탈 규격화를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큰 흐름의 물결이다. 복지국가 논의 또한 인간에 대해 철학에 따른 실천이 미비했던 산업화와 그 이후에 대두할 수밖에 없는 필연의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획일성, 규격성을 고집하고, 새롭게 대두하는 문제 해결에 닫힌 사회, 닫힌 국가는 뒤처지게 될 것이다.
이 정부의 한계가 여기서도 보인다. 제발, 제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개별적 특성에 맞는 모형이 제시되어야 한다. 사실 이미 나와 있는 답 아닌가. 조금만 의지를 갖고 노력을 투여하면 현 정책결정 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장애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인 진전에 기여하는 것 아닌가. 장애인의 삶을 고착시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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