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교육 집착말고, 장애아 특기적성 인정하자 [위드뉴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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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무한의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
장애아동은 자신의 특기적성이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장애아동이든 비장애아동이든 스스로 무엇을 할지 결정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표현의 차이다. 제대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로 구분이 지어지는 것이지, 장애가 있어서 그렇다 아니라고 구분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왜 치료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왜 장애아동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치료에 그토록 집착을 하는가.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장애를 받아들인다고 말을 하지만, 전적으로 안고 가지 못하고 희망이나 기대를 가진 채 그것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을 욕심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어른의 시각으로 보고, 느끼고, 판단하고, 예상을 가지고 결정을 하는 것, 그것을 욕심이라 하고 싶다. 장애를 인정하면 부족함도 받아들이고, 모자라는 것도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반 아이들을 따라가기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무언가를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그 끝은 어디일까 아마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서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재능을 찾아내고 그것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을 단순하게 치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한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무한의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 아이와 눈높이를 맞춰가는 것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 일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무한의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충분히 알고 있으며 충분히 소통을 하고 있는가? 장애를 편의상 두 가지로 나누어 보자 하나는 판단과 사고가 가능한 장애, 다른 하나는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는 장애. 전자의 경우는 몸이 자유롭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정신이 자유롭지 못함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대체로 후자에 속하는 아이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후자의 경우는 모든 아이들이 같은 행동양식을 가지고 같은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다들 각자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생활의 범위가 다르다. 그렇게 다른 특성을 가진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히 단어를 가르치는 것뿐일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 부모들은 깊이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하는 것인지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깊이 고민한 결과가 모든 아이들에게 동일한 교육을 시킨다면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모든 환자들에게 아스피린을 주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장애아에게 능력 있다는 것 인정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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