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 도경만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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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책임을 개인에 떠넘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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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에서 할머니와 함께 산 그는 교회에 꽤 열심히 다니는 소년이었다. 교회에서 한센병 환자나 시·청각 장애인을 많이 만났던 소년은 목사가 될까, 특수교사가 될까 고민하다 전북 우석대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장애인을 가르치겠다는 꿈을 이룬 소년은 지금, 장애인 교육권을 되찾으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달 26일부터 단식을 하고 있다. 바로 도경만(37) 장애인교육권연대 집행위원장이다. “장애인이 도로의 턱을 없애 달라고 목숨을 끊던 시절”인 1989년 대학에 입학한 도 위원장은 교육 현장에 나가기 전까진 그냥 ‘잘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되는 게 소망이었다. 하지만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 장애 학생을 잘 가르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2000년 충남 공주의 한 장애인 학교에서 초등 1학년 담임을 맡았던 때, 26살 민호가 그의 반에 학생으로 들어왔다. 민호와는 다섯 살 차이였다. 민호 말고도 22살, 20살 장애 학생들이 초등 1학년에 입학했고, 반에서 가장 어린 학생이 13살이었다. 도 위원장은 “늦게나마 교육 기회를 얻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나도 헷갈릴 만큼 장애인 교육은 망가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몸은 불편하지만 정신은 말짱했던 학생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 만큼 주눅이 들어 있었다”며 “국가가 져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긴 결과”라고 말했다. 19일 도 위원장은 25일째 단식해 온 사람답지 않게 맑은 눈빛에 생기마저 돌았다. 그가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바랐던 <A class=gu_15_0b0bcd href="http://search.daum.net/cgi-bin/nsp/search.cgi?w=news&q=%C0%E5%BE%D6%C0%CE%B1%B3%C0%B0%C1%F6%BF%F8%B9%FD&nil_profile=newskw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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